50도가 넘는 폭염 속에서 치러진 이슬람 최대 종교행사 '하지(Haji·성지순례)'에서 목숨을 잃은 사망자 수가 900명을 넘었다. 순례에 나섰다가 연락이 끊긴 가족이나 친구가 있는 사람들은 병원이나 영안실을 샅샅이 뒤지며 애를 태우고 있다.

AFP 통신에 따르면 19일(현지시간) 기준 AFP 자체 집계 사망자는 922명에 달했다. 올해 하지에는 약 180만 명이 참석했으며, 18일 기준 메카의 기온은 51.8도까지 올라 극심한 폭염이 이어졌다.

한 아랍 외교관은 이집트인의 사망자 수가 하루 전 300명 이상에서 최소 600명으로 급증했다고 전했다. 이번 하지 희생자 중 가장 많은 사람이 이집트인이며, 이집트 관리들에게는 사망자 600명을 포함해 '순례자 실종 신고' 1400건이 접수되었다고 밝혔다.

한 70대 초반 튀니지 출신 여성은 지난 15일 아라파트 산 순례를 마친 후 실종되었다. 그의 남편은 부인이 "나이가 많은 노인인데, 피곤하고 너무 더워서 잠잘 곳이 없었을 것"이라며 병원을 모두 뒤져봤지만 아직 단서를 찾지 못했다고 말했다. 그의 부인은 공식 하지 비자를 발급받지 않아 에어컨 시설을 이용할 수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페이스북과 기타 소셜미디어 네트워크에는 실종자 사진과 정보 요청이 넘쳐나고 있다.

하지는 이슬람의 다섯 가지 기둥 중 하나로, 모든 무슬림은 일생에 최소한 한 번은 메카 등을 참배해야 한다. 하지 시기는 이슬람력에 따라 결정되며 그레고리력으로는 매년 날짜가 앞으로 이동한다. 올해는 6월 14일부터 19일까지 진행되었다.

이집트 외에도 요르단, 인도네시아, 이란, 세네갈, 튀니지, 이라크의 쿠르드 자치 지역 출신 사망자가 확인되었다. 한 아시아 외교관은 "노년 순례객도 많아 일부는 자연사했으며, 일부는 기상 조건(더위)으로 인한 것으로 추정된다"고 설명했다.

사우디아라비아는 지난 16일 2700건 이상의 '열사병' 사례를 보고했지만, 사망자에 대한 정보는 제공하지 않았다. 지난해에는 200명 이상의 순례자가 사망한 것으로 보고되었으며, 이들 중 대부분은 인도네시아 출신이었다.

이번 하지 사망자가 많은 이유로 일부 전문가들은 사우디가 발부하는 공식 하지 비자를 발급받지 않은 순례객들이 늘어난 점을 지적하고 있다. 매년 수만 명의 순례객이 값비싼 이 비자를 받지 않고 다른 경로를 통해 하지를 시도한다.

버밍엄 대학의 사우디 정치 전문가 우메르 카림은 사우디가 일반 관광 비자를 도입한 2019년 이후 이런 현상이 더 쉬워졌다고 했다. 일반 관광 비자로 들어와 하지를 하는 경우, 사우디 당국이 설치한 에어컨 시설을 이용할 수 없다.

카림 전문가는 예전에는 비자 등의 제한으로 인해 사우디 주민들이 주로 하지에 참여했는데, 이들은 날씨나 상황을 잘 알아 목숨을 잃을 우려가 없었던 반면, 관광 비자를 소지한 다른 나라의 순례객은 아무런 정보를 알지 못한 채 들어온다고 설명했다.

박은지기자/2024.06.20

alska3421@naver.com